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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 하는 곳입니다.

선생님 2009-11-07 09:04 조회 수 4902 댓글 수 0


고요한 눈을 지닌 화가 - 박항률

글 (김성희)

세상살이와 왠지 두터운 벽을 쌓고 살아가는 듯한 작가 박항률. 늘 말이 없는 그의 표정은 마치 깊은 산 속을 조용히 흐르는 맑은 시냇물 줄기가 오랜 세월의 인고 끝에 큰 바위를 뚫어버리는 것 같은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보기 드물게 사물을 정관하는 듯한 고요한 눈으로 해가 갈수록 자신의 향기를 더욱 그윽하게 풍겨주고 있는 화가! 시를 쓰는 화가 박항률! 그의 시집 발표를 가리켜 흑자는 옷자락이 넓은 사람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자신의 독백처럼 늘 꿈을 먹고사는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솔직한 고백을 지닌 화가라고 생각된다.
작품은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하지만 심장의 고동소리가 그 속에서 들리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화가 박항률은 지금껏 일 관해 왔던 추상작업에서 메아리를 잃어버린 자신의 소리를 찾기 위하여 최근 그는 형상적인 모티브에 보다 깊은 애정을 갖고 대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마치 모든 것이 푸르기만 한 한 여름의 풍경이 주는 질식할 것 같은 어떤 그 느낌을 李箱(이상)은 권태라는 해묵 은 수필 속에서 적나라하게 고백했던 것처럼 박항률은 오늘 도시인의 삶 가운데서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짙은 관념의 적막감속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그의 정서가 어우러져 나타난 것이 기하학적 구도로 자리잡은 그의 조형세계가 아니었던가 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사각형 유니트(unit)는 작가의 변명처럼 '늘 기나긴 독백의 사각진 방'의 의미로 부각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여정을 살펴보면 7번째 개인전까지만 해도 박항률은 마치 근대건축가들이 시도 했던 것처럼 다분히 몬드리안적인 구성(composition)언어를 즐겨 사용했던 것 같다.

 

 

The Dawn, Acrylic on Canvas, 53.0×45.5cm, 2006

 

 

 

 

마치 화폭 속의 황금비를 따져 가듯이 나누어간 그의 비례감각은 추상적 모티브를 선의 대비를 통하여 드러냄으로서 단순하지만 작가의 순수한 회화감각을 보여왔다. 어떻게 보면 일부 그 의 작품 속에서 건축가들이 내부 벽을 디자인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는 이것을 탈피하여 8번째 개인전에서 더욱 정제된 추 상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오브제나 프로타쥬 기법을 이용하여 철저한 추상세계를 추구해온 박항률은 요즈음 단순한 화면 속에 새, 항아리, 물고기, 전구, 인물 등 형상적인 대상묘사를 포개 넣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 작가 스스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관념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내면세계의 새로운 변화라고 생각되며 자칫하면 관념의 유희로 전락해 버리기 쉬운 추상의 한계와 매너리즘에 대한 자각이 아닌가 한다.
대부분의 이름 있는 화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 또한 캔버스 앞에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많은 생각과 고뇌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시도를 끊임없이 해온 숨은 노력가이기도 하다.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그는 천 조각에 물감을 묻힌 후 캔버스에 찍어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고자 무수한 반복 실험을 했던 집념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층 더 작품의 밀도감을 더해주기 위하여 cross 형태와 정 사각 화면이 동서양을 통해 가장 완벽한 구도이며 고도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나름의 체험을 자신의 미학으로 소중히 정립해온 작가이기도 하다.

요즘 그가 시도하고 있는 부조형태의 양감과 질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표현은 틈틈이 해왔던 조각에 대한 그의 관심이 그림세계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나이프를 이용해 plaster(석고)로 그려진,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이들의 단순한 표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The Dawn, Acrylic on Canvas, 72.7×60.6cm, 2006

 

 

 

 

 

그가 묘사하고 있는 인물들은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언가 알고 있으나 입을 열고 있지 않는 눈빛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 체념이라고나 할까, 무관심이라고나 할까, 마음 깊은 곳에 세상에 대한 열정은 있으면서도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지성인의 고뇌. 어떻게 보면 회한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리는 인물의 표정과 화면의 구도는 너무나 잘 조화되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신비감마저 감돌고 있다. 화면 전체에서 느껴오는 인물의 투명한 모습은 오렌지 쥬스로는 해결될 수 없는 갈증을 한잔의 생수로 풀어주듯이 물질문명에 찌들은 우리 마음속에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 시대의 인물상인지도 모른다. 그의 투명한 심성을 통하여 창조된 인물상 속에서 요즈음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구도자의 얼굴을 연상시 키는 얼굴들, 그리고 슬픔과 분노를 외면한 듯한 침묵의 표정 속에서 까닭 모를 슬픔이 치 솟아 오르는 것은 잃어버린 우리 모습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닐까. 그는 사람의 얼굴 속에 감추어진 본연의 모습을 볼 줄 아는 그릴 줄 아는 작가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는 대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공통분모격인 불변의 형상을 묘사할 줄 아는 화가이며 영혼을 보는 눈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성과 감성의 한계를 깊이 체험하고 있는 작가이다. 초창기 그가 기하학적인 추상 에 매료되어 많은 작품을 해온 것과 달리 최근에 그는 서정적인 터치로 인간의 감성에 새로 운 면모를 발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항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구도 속에서 평화로움과 안정감이 있음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작가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의 그림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그는 솔직한 화가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단정하다 그리고 선비의 옷매무새와 같이 단아한 맛이 있다. 너무나도 잘 정리되어 있는 그의 화실의 모습과 작품 속에서의 잘 정리된 구도, 세련된 색채감각, 말끔한 마무리에서 이러한 그의 성품을 잘 엿볼 수 있다. 추상에서 조금씩 벗어나 인물을 다루고 있는 작가 박항률. 그는 고집스럽게 구상만을 주장해온 화가도 아니요, 또 추상만을 주장해온 화가는 더욱 아니다.

 

 

 

 

 

The stare, Acrylic, Charcoal, Coloured Pencil on Paper, 167x148cm, 2006

 

 

 

 

 

 

자기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림세계를 바꾸어 가는 당위적인 화가라는 생 각이 든다. 그는 '나는 화가'라고 하는 그 어떤 주장도 하지 않는 작가이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느낌을 순화 할 줄 아는 화가라고 하는 점에서 나는 그의 감성의 순수함을 기억하고 싶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고 있는 화가.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콘크리트 차가운 거리의 풍경에서 잃어버린 토담의 정감과 사람 내음새, 인간의 손때에 멋과 맛을 요즘 깊이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또렷한 목소리로 조용한 침묵 속에서 바위를 녹이는 듯한 정열로 하루하루 캔버스를 완성해 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유치환의 한 시귀처럼 그는 이 시대에 애련에 물들지 않는 바위가 되고자 하는 그림세계를 지닌 화가라고나 할까.
어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먼 농가의 켜진 초롱불이 더욱 더 그 빛을 우리 마음 가운데 발하듯이 세상에 모든 그림이 나름의 목청을 돋구어 자신을 변혼하면 할수록 침묵 속에 일관해온 박항률의 회화세계는 우리 마음 가운데 초가집의 초롱불처럼 남게 될 것을 나는 새삼 생각하게 된다. 짧은 시간 속에서나마 박항률의 작품을 보고 나름의 감성을 적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그림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기쁨이 있다고 생각되며, 이 기 쁨을 글을 통해 다름 사람과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에게 침묵의 의미를 조용하게 보여주는 진솔한 작가 박항률에게 더욱 기대가 되는 것 은 작가의 깊은 내면적 체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The Dawn, Acrylic on canvas 90.9x72.7cm 2006

 

 

 

 

 

 

 

 

 

The Dawn, Acrylic on canvas 53x45.5cm 2006

 

 

 

 

 

 

 

 

The Dawn, Acrylic on Paper, Ø26.5cm, 2006

 

 

 

 

 

 

 

 

The Dawn, Acrylic on canvas 90.9x72.7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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