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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참신성, 규모, 구상미술 여부등 고려하여 추천

드로잉을 위한 공간들

Spaces for Drawing展
 
2013_0222 ▶ 2013_0601 / 일,공휴일 휴관

참여작가
고진영_남화연_정연두_히라키 사와_유현미_마이클 왕
주최 / 하이트문화재단
후원 / 하이트진로주식회사
기획 / 한금현_사무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하이트컬렉션
HITE Collection
서울 강남구 청담동 132-12번지 하이트진로주식회사 내 B1~2층
Tel. +82.2.3219.0271
hitecollection.wordpress.com
드로잉을 위한 공간들: 상상의 첫 발현에서 실험적인 형식까지 

● 『드로잉을 위한 공간들』은 드로잉에 대해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해보는 전시다. 일반적으로 드로잉은 삼차원 대상을 이차원 공간에 구성하여 실제를 묘사하는 행위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드로잉은 예술적 장르라기보다 '그린다'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새로운 매체가 출현할 때마다 다양한 형태의 드로잉 방법이 등장했고 드로잉에 대한 미학적 정의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의 수고뿐만 아니라 도구와 기계에 힘입어, 그린다는 행위는 실제 공간을 넘어 가상 공간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전시는 다양한 형태의 드로잉을 탐구하고 매체 변화, 혹은 작가가 드로잉을 자신의 작업에 위치시키는 양상에 따라 확장되는 드로잉의 개념을 성찰해본다. 여기서 순수한 의미의 드로잉이 무엇인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드로잉이 예술적 장르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탐구하는 전시도 아니다. 드로잉은 그 자체로 끊임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또한 다른 매체와 결합해 불가분한 공생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 전시가 탐색하려는 지점은 작품과 콘셉트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는 드로잉에 대한 고찰과 그에 대한 작가의 입장과 태도이다. 나아가 매체적인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 동시대 미술에서 이 같은 드로잉에 대한 탐색은 작가가 개념을 초기화하는 과정을 더듬는 데서 시작해 작품으로 드러날 때까지, 그 중간 과정을 드러내는 시도이기도 하다. 

● 일반적으로 드로잉은 선을 위주로 그리는 행위, 혹은 작업 전반을 위한 스케치, 도안, 초벌 그림 등의 의미를 지닌다. 한편 드로잉의 사전적인 의미에는 '그리다' 외에도 '끌어내다' '뽑아내다' '당기다' 등의 의미도 있다. 말하자면 드로잉은 어떠한 실체에서 정수를 뽑아내는 행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최소한의 수단과 방법으로 나타낸 결과물을 말한다. 드로잉의 대상은 어느 무엇도 될 수 있고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실제로 드로잉은 인간이 자신의 주변을 묘사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되었고, 머릿속 추상적인 생각이 내 몸의 움직임을 통해 화면 위에 표현되는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드로잉은 화면 위에 드러나는 흔적이며,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의 시간성이 도면 위에 고착화된 하나의 형태이자, 바로 그 움직임을 포착하는 행위이다. 

● 회화와 드로잉의 차이는 이제 명확하지 않다. 두 세기에 걸쳐 이 두 분야는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각각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드로잉과 회화는 매체의 경계도, 장르의 구분도 희미해져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술이 발전하고 종류가 다양해졌다고 단순히 드로잉과 연계된 매체의 기술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드로잉 개념의 확장은 단지 예술 매체의 기술적 변화에 따른 드로잉의 변모에서 더 나아감을 말한다. 작업과 보는 이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작업의 위치와 개념을 달리 설정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드로잉은 그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드로잉은 화면 안에서 사물을 정지시키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드로잉의 선을 한눈에 볼 수 없고 화면을 아래위로, 그리고 가로지르며 보아야 하듯 우리의 시선은 몸과 눈의 움직임에 결부되어 드로잉 안에서 시간의 지속을 경험하게 한다. 드로잉에서 시간, 공간, 신체, 그리고 움직임은 근원적인 요소이며 이러한 개념이 매체에 따라 공간과 시간에 어떻게 삽입되고 변형되는지가 이 전시가 탐색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 그렇다면 어떠한 개념이 드로잉에 펼쳐질 수 있는가? 어디에서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드로잉의 개념에는 무엇이 가로지르고 있는가? 마치 비나 그림자, 혹은 메아리처럼, 기억 속에 남은 장면이나 무엇을 지시하는 행위처럼 드로잉은 현재 펼쳐지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져 있는 혹은 앞으로 펼쳐질 무언가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의도적인 계획이나 디자인과 같이 구성적인 공간에 가로질러 있기도 하다. 문제는 작업을 형성하는 과정이 드로잉과 연결되는 중간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손과 몸을 써가면서 만드는 기존의 전통적인 매체가 어떻게 테크놀로지와 결합되어 동시대 미술까지 이어지며 새로운 감각을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시작해, 드로잉의 사전적 의미가 상기시키듯, 대상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행위와 결부된 상상력, 그리고 심리학적이고 현상학적인 관계 안의 어떤 긴장감 등으로 그 개념은 확장되어 간다. 

● 'draw'는 '그리다'라는 동사이지만 'drawing'은 '그리다'는 행위가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단어이다. 드로잉은 화면에 남겨진 행위의 흔적일 뿐 아니라 동작과 행위 자체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그리하여 드로잉은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시작해 '그리다'라는 신체의 동작과 더불어 일어나는 현상적인 상황 전체를 말한다. '그리다', '끌어내다', '이끌어내다' 등, 드로잉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간의 상상력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상상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드로잉과 상상력은 상호 순환적인 고리 안에 놓여 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그리는 행위는 시선, 욕망, 그리고 인간의 주관적인 사고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무의식적인 선택이 놓이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드로잉에 대해(혹은 회화에 대해) '붓의 비'(the rain of the brush)라는 표현을 썼다. 몸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로 시작되나, 그리기의 과정 자체는 언어적인 구조를 넘어서는 무의식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실재의 존재에서 상상의 세계로 가는 첫걸음이 그리기 행위이다. 시선은 존재의 모든 양상이 어떤 교차점에서 만나는 것이고 드로잉은 상상적인 세계로 진입하는 중재의 공간 안에 있는 것이다. 라캉이 그리기를 '붓의 비'라고 말한 것은 시선이 놓이는 것에서 처음으로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무의식적인 행위여서 작가는 그의 붓에 대해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그것은 마치 비와 같이 작가에게서 떨어져 나와 던져지는 것, 일격으로 가해지는 것이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무의식적으로 원격 조정되는 것이고, 다시 말해 붓에서부터 떨어지는 빗물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무엇이 있다. 다른 것과 더불어 같이 일어나는 행위로 질서와 의미를 주도하는 상징적인 제도를 지나쳐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더욱 교화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이러한 행위는 무언가의 흔적으로 남고, 자국 지어지고, 맵핑되는 것으로 어디서부터 우연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막연한 우연이 아니라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넘어가는 그 무엇이며 드로잉은 이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드로잉은 신체의 동작뿐 아니라 상상의 과정을 도출하는 행위이다. 

● 한편 드로잉은 마치 건축에서 도면을 그리듯 철저히 계산되어 도출되는 그래픽이기도 하다. 드로잉은 작가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대면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매체이자 작업 실현의 첫 단계이다. 이러한 드로잉에 대한 개념은 연필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뿐만 아니라 첨단의 컴퓨터로 구현된 그래픽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혹은 건축 도면 같은 계획적인 드로잉도 역시 작업의 실현을 위한 구조로서 작용한다. 그러나 여기서 매체의 물리적인 변화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작업의 일차적 실현을 위해 드로잉에 철학적, 문화적, 예술적 개념들이 덧씌워지는 과정, 그리고 그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받아들여지는가가 주요한 지점이다. 

● 『드로잉을 위한 공간들』에 참여하는 고진영, 남화연, 정연두, 히라키 사와, 유현미, 마이클 왕 등 6명의 작가들은 각기 회화, 사진, 비디오, 컴퓨터 그래픽, 설치,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매체와 더불어 드로잉의 새로운 개념화에 동참하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드로잉과 다른 매체와의 관계, 그로 인한 담론의 확장, 드로잉에서 확장된 개념적 작업의 공공적 역할 등을 예술적인 관점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인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각기 다른 매체로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실현하는 작가들에게 드로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듣게 된다. 이들은 실험적이고 복합된 형식의 작업(cross-disciplinary work), 혹은 협업적인(interdisciplinary) 접근 방식을 취하며 답하고 있다. 그리하여 드로잉은 공간, 시간을 가로지르며, 회화적이고 건축적이고 가상적으로 확장되며 공연, 무대, 문학, 음악, 무용 등의 다른 매체들과 더불어 공존하고 상호작용한다.


고진영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을 이용한 드로잉을 선보인다. 빛, 구도, 조명, 인위적 무대 연출, 또는 기계적 이미지 변형 등의 고전적인 방법에서 사진적 조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에는 여러 방식의 사진적 그리기 도구가 접목되어 있다. 고진영은 이 도구를 의도적으로 비틀어 사용한다. 그가 대상으로 삼은 일상은 조명, 세트와 같은 사진적 도구로 말미암아 화면 안에서 초현실적으로 재구성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펙터클한 이미지는 제작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신화와 환상을 깨버린다. 

●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2010)에서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이미지 조작을 조작하여 한 장소에 엮인 각기 다른 시간대를 한 화면에 놓이게 한다. 화면은 솔기 없는 옷감처럼 이어져 있지만 그 안에 든 무수한 시간대는 사진의 초현실적 시간성을 드러내며 프레임 안에서 이미지와 함께 뒤섞여버린다. 작가는 사진을 자유롭고 능란하게 다루며, 있는 그대로 이미지를 투명하게 재현하기도 하고, 조명과 무대 세트 등 사진적 장치를 이용한 인위적 화면 구성을 도모하거나, 사진적 조작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재배치하는 등 적절하게 이용한다. 전혀 다른 문맥의 이미지를 파편적으로 나열하는 전시설치 방식 또한 얼핏 보면 순진해 보이지만 전략적이기도 하다. 실험실의 방울뱀, 인공과 자연의 대비가 뚜렷한 풍경 이미지, 상업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사립 박물관의 모습, 그리고 도시적 환상과 슈퍼 히어로의 파멸을 대비시키는 영화 세트와 같은 장면 등 시퀀스 없는 이미지를 나열함으로써 작가는 일상과 거리 두기를 하는 한편, 신화적인 사회 현상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고진영의 사진은 풍경도, 정물도, 스냅샷도, 연출 사진도 아니다. 하지만 사진적 장치의 구조를 해체하고 더불어 자연, 인공, 죽음, 생명, 신화, 일상, 환상, 이동, 변환, 사실성과 조작 등 고정되지 않는 개념으로 보는 이의 사고를 무한 확장시킨다.



남화연에게 드로잉이란 단순한 그리기가 아니다. 드로잉의 요소는 가능한 물질의 입자, 가능한 사건의 알리바이 등 작업의 개념적 기본 구조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공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작가에 의하면 화학책은 인간의 사고의 과정과 분자, 원자 등 물질의 기본 요소들이 표면을 구성하는 과정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드로잉으로 나타나면서 일종의 종이 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나 무용과 같다고 한다. 그리하여 남화연의 드로잉에 대한 관심은 점차적으로 움직임 혹은 일종의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로까지 확장된다. 종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하다. 종이는 마치 무대와 같고 각 요소들은 마치 퍼포머와 같다. 그리고 드로잉의 행위는 종이 위에서 하는 퍼포먼스와 같다. 또 여기에는 부재에 관한 감각이 있다. 작가의 머리 속에는 화학적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퍼포머들도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부재하고 있고, 아무런 목적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다. 「세 개로 이루어진 조합 (A Set of Three)」(2012)는 이케아(IKEA)의 조립식 가구 매뉴얼을 그대로 인용해서 재배치한 드로잉 작업이다. 이케아는 생활의 방식을 규정짓고 있다. 이케아 제품에는 매뉴얼이 있어 그 매뉴얼에 따라야 하고 여기에는 반감이 따른다.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이케아는 한편으로는 민주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주의적인 양상도 가지고 있어 이율배반적이다.

2013021405h.jpg 
정연두_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 시놉시스 드로잉_잉크젯 프린트_29×40cm_2007
Courtesy of the artist.


정연두는 일상의 소소한 경험에 작가적인 상상력이 동원된 사진,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함으로써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가이다. 「아돌레센스 (Adolescence)」 (2010)는 젊고 건강한 학생들의 캠핑 현장을 담은 생생한 사진 기록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산을 좋아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취향과 젊음에 대한 향수가 뒤섞인 이미지의 재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현장의 생생함을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으로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구도를 정하고 빛을 조정하고 톤을 맞추어 마치 그림을 그리듯 정교하게 장면을 만들어낸다. 사진은 한 순간을 포착하는 스냅 사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작가에 의해 정교하게 계산된 빛으로 그리는 그림과도 같다. 특히 정연두 사진에서의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대상과 배경에 어우러지는 유동하는 물질이며, 따뜻하고 완숙하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화면 안의 모든 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정연두는 카메라를 통해, 빛과 톤으로, 그리고 사진적 대상을 실시간 점검하면서 사진으로 하는 드로잉을 한다. 

● 「아돌레센스」와 같이 전시되는 「다큐멘터리 노스탈지아 시놉시스 드로잉 (Documentary Nostalgia Synopsis Drawings)」(2007)은 정연두가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을 때 제작된 영상 작품인 「다큐멘터리 노스탈지아 (Documentary Nostalgia)」(2007, HD Projection, 85min)의 시놉시스를 위해 만들어진 36개의 드로잉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꿈과 환상을 영화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는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상상에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여기서 드로잉은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스케치이며 타인과의 소통의 수단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본 작업은 보여주지 않고 작업을 위한 시놉시스 드로잉과 작품의 제작 광경을 담은 영상만이 설치된다.


히라키 사와는 자신의 사적인 공간 안에서 만든 영상 작업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사와는 집안 내의 인테리어를 움직임을 위한 장치로 변형함으로써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사건이 벌어지도록 환상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손으로 이용한 그림과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중간에 위치한 그의 영상작업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오브제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히라키 사와의 「에어라이너 (Airliner)」(2001)는 텅 빈 책을 손으로 넘기며 그 속도감으로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영상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러한 행동은 마치 플립북을 연상시키지만 막상 이미지는 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디지털로 만들어진 영상이다. 비행기의 밀도감과 지속적인 움직임은 동시대의 글로벌한 전환과 암울한 혼잡을 상징한다. 동시에 사와의 상상력은 비행기의 에어쇼와 같은 즐거움과 놀이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 「사야를 위하여 (For Saya)」(2010) 는 두 개의 비디오로 이루어진 영상으로 아주 작은 모니터를 나무 박스 안에 넣어 제작한 영상 설치작업이다. 이 작업은 히라키 사와의 최근의 작업인 「윤곽(Lineament)」의 전초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작가는 "편차(off set)"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고 또 그것을 기억을 상실하는 과정은 흔히 경험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언제나 편차가 있다. 히라키 사와는 이러한 편차적인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영상작업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유현미의 작업은 그린다는 행위와 그림을 보는 방식에 대한 환영을 실제로 관객에게 제공하는 시도를 한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삼차원의 공간을 이차원의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이고 여기에는 시각적인 환영이 뒷받침 된다. 유현미는 이차원의 공간에서 행하는 회화 작업의 요소들을 삼차원의 공간에서 행하고 있다. 공간에 사물을 배치하고 채색하고 배경을 덧칠한다. 실제의 빛을 무시하고 상상의 빛을 만들어 그에 맞는 그림자와 음영을 그려 넣는다. 원래의 거리감과 음영이 아닌 작가의 상상에 의한 회화가 삼차원의 공간에 그려진다. 마치 현실에서 대면한 비현실적인 경험을 유현미의 삼차원의 공간에서 하게 되며,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연극적 무대와 같이 몸이 개입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구성하는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 모든 작업의 완성은 사진으로 매듭지어진다. 이차원의 회화적 요소로 만든 삼차원의 공간은 다시 이차원의 사진으로 완성된다. 시각적 환영은 또 다른 환영을 낳는다. 유현미의 작업은 일차적으로는 사진인지 회화인지 모를 이미지의 매체의 혼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실제의 사물과 시각적 환영, 이차원과 삼차원, 인위적인 그리기와 자연스러운 사진적 재현 등의 경계에 서있는 작업을 통해 시각 이미지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들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 2010년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연작 「포트레이트 (Portrait)」(2010~)는 「정물 시리즈(Composition Series)」(2008~)와 같은 일루젼을 주며 얼핏 보면 회화인 것 같기도 하고 사진같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자세히 관찰하게 되면 이미지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인물의 눈이 깜박이는 것을 보게 되면서 작업이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영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회화와 사진의 이미지에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 그러나 유현미의 동영상은 이러한 정지된 이차원의 이미지들이 놓치는 시간성이 폭로되는 순간을 잡아내고 있다. 시간이 개입되는 동영상에서의 움직임은 회화나 사진에서의 그리기 행위가 결국은 실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일부만을 끄집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유현미에게 있어서 그리기(drawing)는 선택적으로 취하고 유연하게 진행되는 작업 과정의 일부이다.

마이클 왕_카본 카피 Carbon Copy_(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타라탄타라 Taratantara, 1999)_
-48.95 tons CO2. offset price: $489.50_2012
Collection of Lorenzo Rodriguez Jr. and Cristina Revert, New York.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xy Production, New York.


마이클 왕의 관심사는 단지 드로잉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예술작업의 형식을 빌어 작업을 완성하는 것이 일종의 메커니즘을 구성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하면 비예술적인 시스템을 받아들여 미적으로 인지하게 하거나 혹은 어느 정도 그 선상에 놓이기 위해서 전통적인 예술양식으로 제시한다. 어떤 프레임을 깨뜨리기 위해 전통적인 프레임에 있는 예술적인 관람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갤러리 가이드로 과학자를 고용한다던가, 탄소방출예방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갤러리를 이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마이클 왕은 드로잉에 관해서는 계획하는 도구, 혹은 뭔가를 추측하게 하는 작업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드로잉은 단지 그림을 그리는 행위 만으로 고정될 수 없다. 특히 건축가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듯이 드로잉은 일종의 구조이다. 작가는 드로잉을 물질적인 매체로 본다기보다는 예상 가능한 실천에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그리기는 하지만 절대 짓지는 못하는 건축가의 작업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디어가 물질로 들어서는 첫 단계이라 한다. 「카본 카피스 (Carbon Copies)」(2012)는 어떤 현상을 예견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물질적인 세계에의 개입이기도 하다. 작업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인 원작의 카피(Copies)를 파는 것은 지구의 대기를 실제로 변형하는 행위이다. 그의 작업은 예술작업의 가치기준에 대한 다른 시스템을 상상하게 하고, 다른 교환의 장치, 그리고 체계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한 다른 정의를 생각하게 한다. 

● 「카본 카피스(Carbon Copies)」는 20개의 현대미술 작업 제작 시 생성된 탄소 발자국을 제공하고 있다. 탄소 발자국은 각각의 작업을 제작하기 위해 대기에 방출되었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다. 「카본 카피스」는 원작들을 작은 사이즈로 다시 제작한 모형으로 정육면체 형태로 이루어졌다. 원작들에 의해 방출되는 CO2의 양을 1:5,000,000의 비율로 축소한 볼륨의 정육면체가 각 모형의 사이즈가 되었다. 원작의 탄소 발자국을 상쇄할 수 있는 금액을 정확히 산출하여 「카본 카피스」의 가격으로 산정했으며, 탄소 방출 억제기금을 위한 증명서를 이 가격에 구매함으로써 탄소 발자국 상쇄가 가능하다. 각 「카본 카피스」의 판매로 조성된 기금은 탄소 방출 억제금으로 전환되며 원작의 탄소 발자국은 그제야 지워지게 된다. 탄소 방출 억제금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는 공기 중에서 CO2를 없애는 데 필요한 탄소 포집과 저장 기술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쓰이거나 대체 에너지 개발 등에 사용된다. 한 장에 10달러인 탄소 방출 억제기금 증명서로 대기 중 1톤의 CO2를 줄일 수 있다. 
■ 한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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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미학 - 이경모展 전시일정 2013. 06. 19 ~ 2013. 06. 29 초대일시 2013. 0. 0 PM 5:00 관람시간 Open 10:00 ~ Close 19:00 장은선갤러리(Jang Eun Sun Gallery)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66-11 T. 02-730-3533 www.galleryjang.com 사의와 사실의 접점 안...

조성호 개인展 / 장은선갤러리(Jang Eun Sun Gallery) / 2013. 03. 06 ~ 2013. 03. 16

『 조성호展 』 조성호, 싼토로니 이아, 91x727cm, Oil on Canvas 전시작가 : 조성호(Cho Sungho) 전시일정 : 2013. 03. 06 ~ 2013. 03. 16 초대일시 : 2013. 03. 06 PM 4:00 관람시간 : Open 10:00 ~ Close 18:00 장은선갤러리(Jang Eun Sun Gallery) 서울시...

『 求道, 그 純粹의 時間 』/ 갤러리 포스 개관展 / 2013. 02. 15 ~ 2013. 03. 27

『 求道, 그 純粹의 時間 』 갤러리 포스 개관展 전시작가 : 김태호, 문봉선, 왕열, 이석주, 이종구, 정일, 함명수 전시일정 : 2013. 02. 15 ~ 2013. 03. 27 초대일시 : 2013. 02. 15 PM 4:00 관람시간 : Open 10:00 ~ Close 18:00 갤러리 포스(GALLERY POS) ...

`Victorian Romance` / 서울미술관 2층 카메오전시실 / 2013. 3. 1(목) - 6. 16(일)

`Victorian Romance` `Victorian Romance`는 흔히 `빅토리안 페인팅`(Victorian Painting)이라 불리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표적인 회화작품들을 아트프린트로 소개하는 전시다. 서양미술 가운데 빅토리안 페인팅은 가장 화려하고 감각적이며 ...

夢•緣 몽•연 - 석용진展 / 대백프라자갤러리 / 2013. 04. 09 ~ 2013. 04. 21

夢•緣 몽•연 - 석용진展 서예와 그림을 접목한 일사(一思) 석용진의 대규모 작품전이 수성아트피아와 대백프라자갤러리 공동 기획으로 오는 4월 9일부터 21일까지 수성아트피아와 대백프라자갤러리 전시실 전관에서 마련된다. 작가 석용진은 대학에서 회화를 ...

김기택展 / 장은선 갤러리 / 2013. 04. 17 ~ 2013. 04. 27

김기택展 김기택, 아침이슬8, 162x112cm, Oil on Canvas, 2012 전시작가 김기택(Kim Kitaeg) 전시일정 2013. 04. 17 ~ 2013. 04. 27 초대일시 2013. 04. 17 PM 4:00 관람시간 Open 10:00 ~ Close 18:00 장은선갤러리(Jang Eun Sun Gallery) 서울시 종로구 경운...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 / 서울시립미술관 / 6월 14일(금) ~ 9월 29일(일)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 일시 6월 14일(금) ~ 9월 29일(일)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문의 http://gauguin.kr 서른다섯에 증권거래소를 그만두고 돌연 전업화가의 길을 선택했던 후기인상주의 대표화가 고갱. 소설 『달과 6펜스』의 실제 모델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