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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A V I D H O C K N E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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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사진은 르네상스 이후 원근법이라는 시각체계의 최종적인 귀결점이었다. 사진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카메라라는 구조 자체가 이미 화가들에 의해서 드로잉 도구로 사용되어 졌었고, 이는 원근법이라는 수학적인 원리에 입각해서 편리하게 과학적으로 그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원근법이라는 시각은 단순히 회화의 단편적인 양식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아가 근대적시선의 체계가 되었으며, 결국 사진을 탄생게 한 원인이다. 즉, 사진의 출현은 비로소 원근법이라는 시선의 체계를 보다 구체화 하고 완성하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사진이 탄생할 쯤부터 현대회화가 탈 원근법적인 방식으로 나아간 것은, 그러니까 사진이 원근법이라는 시선의 체계를 완성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러나 사진은 바로 원근법의 가장 이상적이고도 과학적인 적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시각은 사실 수 없이 많은 탈 원근법의 시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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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렌즈에 의한 과장된 원근감이나 혹은 축소 등 왜곡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거나, 현실의 총체적인 모습을 파편적이고 단면적인 시 공간 으로 재구성하는 사진은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기계가 만들어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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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진적인 시각은 단일한 시점에서 바라본 원근법의 기본 원리를 위배 하고 있거나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진적인 시각의 특성을 발터 벤야민은 ‘무의식적 시각’ 이라 불렀다.
비록 초기의 사진가 들은 원근법이라는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어 사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시각들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화가들은 끊임없이 사진의 독특한 시각을 자신의 작업에 응용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회화에서는 오히려 사진적인 시각이 탈 원근법으로 나가는 하나의 통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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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 of the Pool, Los Angeles,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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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후 사진 계에 불어 닥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와 같은 사진의 시각에 대해서 문제를 제시하는 일군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사진을 이용한 일종의 근대적인 시선의 체계의 뿌리 깊은 신화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작가 중 한사람이 바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이다.
호크니가 사진을 처음 시작한 것은 60년대 초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직후였다. 그러나 당시는 단지 취미삼아 주변의 사물이나 친구들, 또는 회화의 제작 과정 따위를 포켓 카메라로 스냅사진을 찍는 정도에 불과 했다.
이 때 작품들은 두꺼운 가죽 앨범에 보관 하여 뉴욕의 소나벤트 화랑에서 1967년 최초의 사진전을 열었다. 그중 20점을 따로 골라 만든 포트폴리오를<사진 회화 Photographic pictures>라고 부른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도 이 당시에 찍어둔 사진을 가지고 수채화나 드로잉 습작을 제작한다고 한다.
실제로 호크니는 화가다. 물론 오늘날 화가다 사진가다 등 진부한 구별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를 영국 팝아트의 기수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그는 특유의 풍부한 실험정신으로 회화· 데생· 판화· 사진· 영화· 무대장식· 일러스트레이션 등 거의 모든 미술 장르에 손을 댔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양식적 면모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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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smin,Composite Polaroid,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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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후에도 로체스터 미술관이나 뉴욕의 그레이 화랑 등에서 계속 사진전을 열었으나, 특히 사진가로서 높게 평가받게 된 것은 1982년 뉴욕의 앙드레 에말리치 화랑에서 드로잉과 더불어 전시된 사진작품들에서였다. 이 사진들은 소형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된 것으로 마치 바둑판의 눈과 같이 나란히 배치된 다중적인 이미지이다.
이제까지 호크니의 사진은 한 장으로 완결된 사진이거나, 몇 장의 인물이나 풍경을 마음대로 연결시켜 하나의 광경을 만드는 수법이 주였으나, 여기에서는 몇 십장, 몇 백 장이 넘는 사진들을 배열하여 구성하는 매우 독특한 것 이였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 대신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를 사용하면서부터 사진의 조합이 보다 자유롭고 복잡하게 되었다. 작품의 형태를 사각으로 한정지었던 틀도 없어졌으며 각각의 화면은 불규칙적으로 결합되었다. 모터 드라이브가 붙은 카메라로 연속 촬영한 사진들을 오려서 연결시키면 기존의 틀을 무시한 한 장의 커다란 사진이 완성된다. 이 화면 속에서는 평범한 풍경이나 인물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이 순식간에 매혹적인 이상한 공간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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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Mothe, Photographic collage,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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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하나의 피사체를 여러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노출 차이에 따라 톤과, 색상의 명도가 바뀌기도 하고, 촬영거리와 앵글의 각도차이에 의한 더욱 다양하게 이미지가 만들어 진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에 수십 롤(roll)의 필름이 소모되고 작가 자신도 인화과정을 거치기 전에는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찍었는지를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인화지에 나타난 대상은 조각난 단편들로서 그 현실적 외양에서 분리되고 사물로서의 본질적 의미도 상실된다. 단편화된 이미지는 작가의 주관성이나 의도가 개입하여 실재 대상과의 연관관계가 탈각되고 본질적 요소가 이미 변성된 것이다.
이러한 해체적양상은 최종적으로 이어 붙여지면서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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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oes, Kyoto,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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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합된 사진을 보면, 어떤 부분은 클로즈업으로 강조하고 어떤 부분은 이중으로 표현하면서, 상하좌우로 조금씩 어긋나게 촬영하여 중복된다. 즉, 한 작품을 이루는 각각의 독립된 사진의 앵글의 높이나 원근법등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기 때문에 화면전체의 이미지가 마치 입체파 회화를 보는 듯하다. 이처럼 촬영된 사물의 단편을 집적시키는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물이나 풍경이 아니라 호크니의 시선 그 자체이다.
그의 시선은 일종의 곤충의 촉수와 같다. 호크니의 이러한 작업은 관습적으로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즉, 연속적인 사진을 이어붙인 다중적인 시점의 사진들은 기존의 일반적인 사진의 시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호크니는 ‘무엇을 찍었는가.’ 보다 ‘어떻게 보고 느꼈는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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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ir,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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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ther I, Yorkshire Moors,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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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호크니의 작업의 방향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카메라는 언제나 세계를 동일한 모습으로밖에 포착할 수 없다. 그것은 정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고, 우리들의 육체를 없애버린다. 왜냐하면 정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들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한쪽 눈을 감은 채 하나의 구멍을 통해 세계를 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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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ce Furstenberg, Paris, August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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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의 작업이 비록 사진매체를 이용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측면에서 피카소(Picasso Pablo) 를 닮아 있다. 피카소가 3차원의 현실을 다차원시점으로 2차원의 평면에 묘사했다는 점이 호크니의 포토 콜라주 작업과 유사하다. 즉, 단일시점의 원근법에 의한 묘사 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들은 현실을 이미 다차원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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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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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술양식을 섭렵했기에 그가 영향 받은 작가 역시 많은 편이다. 그중 그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바로 피카소다. 호크니는 피카소를 통해 예술가란 한 가지 방법만을 가지고 닫힌 틀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새로운 표현방식을 꾸준히 탐색해야 한다는 예술관을 갖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공간과 평면의 상반되는 개념을 서로 연결시켜 나름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연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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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ude,Theresa Russell, June 17,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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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주의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재구성하는 경향은 82년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한 작업으로 더욱 가속화된다. 이 같은 경향은 하나의 오브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해체했다가 다시 구성한 <1985년 8월 10일 파리의 뤽상부르그 공원> (1985) 같은 사진 콜라주 작품들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본래 호크니는 처음엔 입체주의 정물화에 대한 단순한 모방으로 이 사진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으나 점차 더 복잡하고 야심만만한 작업으로 성장시켜간다. 그의 작업 방식이란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여러 시점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찍은 사진을 자르고 재구성한다. 결국 사진에 내재되어 있는 원근법의 법칙을 완전히 뒤엎어버림으로써 사진이 갖고 있는 재현이라는 체계를 완전히 해체시킨 것이다.
여기에 사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합치시킴으로써 결국 좀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공간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호크니는 자신의 사진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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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arblossom Highway,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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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진이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해주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을 믿는다. 그러나 원근법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없애고 현재의 시점을 다양화함으로써 사진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좀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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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lage des Coccinelles de David Hock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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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의 작업 특성은 사진이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근법적인 질서와 탈 원근법적 질서인 ‘무의식적 시각’을 전면에 들어내서 근대적 시선의 재현 체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 이 하나 있고, 일상적인 풍경이나 인물들을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특이함이 있다.
그의 대다수 작품들에서도 많이 느껴지는 것은 어떤 편안함이다. 그의 일상적인 주제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친밀함과 동시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 과정이 특별한 기술 없이도 누구든 장난치듯 쉽게 만들 수 있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은 호크니가 전적으로 팝아티스트기도 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주제를 심각하지 않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