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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참신성, 규모, 구상미술 여부등 고려하여 추천

길을 묻다 (The Long and Winding Road)

박병춘展 / PARKBYOUNGCHOON / 朴昞春 / painting 2013_1101 ▶ 2014_0105 / 월요일 휴관


박병춘_기억의 풍경_한지에 아크릴채색_198×414cm_2013


1. 성곡미술관은 2013년 마지막 전시로 『박병춘: 길을 묻다』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성곡미술관이 지난 2009년부터 마련, 진행해온 '중견중진작가집중조명'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의 당대 허리세대작가를 주목하여 그들의 작업을 미술관 전시를 통해 응원, 지원하는 성격의 전시다. 관객에게 해당 작가와 작업의 존재, 그 예술적 의의와 가능성을 널리 알리고 소개하는 목적이 우선이지만, 사실 작가 자신을 겨냥한, 작가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다. 자신의 작업과 동고동락했던 지난 시절과 현재를 작업을 통해 돌아보고 살피며 작가로서의 현좌표, 또는 작업의 미래적 비전을 스스로 가늠해보는 기회를 작가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박병춘_낯선, 어떤풍경_한지에 먹, 아크릴채색_69×260cm_2013
박병춘_낯선, 어떤풍경_한지에 먹, 아크릴채색_69×260cm_2013_부분


2. 주지하다시피 한국화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미술계에서 조각, 판화 등과 함께 이른바 '소외장르'였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물리적 전시 횟수나 실제 미술시장에서의 거래, 또는 아트페어나 시중에 유통되는 규모나 비율을 따져 보아도 그러하다. 이러한 불균형 현상을 계량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물론 미술소비자의 미감변화와 국제적인 미술트렌드의 직간접적인 영향과 그에 따른 쏠림현상도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작금의 한국미술과 그에 따른 정형화된 유행형식, 특히 때 아닌 이런저런 극사실화풍이 과잉 유입, 공급되면서 돈을 쫓는 젊은 작가들의 시장충성도 높은, 당도(糖度) 높은, 세속적 작업들로 미술계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 이를테면 만나기 힘든, 보기 힘든 형식과 장르가 미술계에 새롭게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행의 중심에 있던 회화 장르 내에서도 이슈특정성(issue-specific)을 담보하는 다양한 형식, 이른바 이슈의 종(種)다양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80년대의 신표현주의적인 성향을 현실이슈에 맞게 발전시키거나 그들의 감성과 철학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작업, 또는 브러시 스트로크(brush stroke)가 살아 꿈틀거리는 두툼한 질감의 부조적 회화, 작가의 제작충동이 거친 호흡으로 드러난 구상표현적 회화작업 등을 접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추상작업은 물론이었다. 질퍽하고 질펀해야할 회화가 대체로 건조하고 플랫(flat)했다. '누가누가 더 꼼꼼하고 예쁘게 잘 그리나' 대회를 보는 듯했다. 사진이 할 일을 굳이 붓을 놀려 회화가 대신하기도 했다. 사진은 회화를 지향하고 회화는 사진을 닮고자 했다. 영상(映像)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원한 판타지(fantasy)의 제왕―회화, 미술장르의 꽃―회화가 그들만의 독보적 가능성의 장(場)내에서 지나치게 안정적인 현실안주(現實安住)를 택했다. ● 특히 당대의 이념갈등과 대립, 충돌의 사회상을 적극 반영한, 이른바 동서문제에 대한 관심이라든가 빈곤, 기아 등과 같은 남북문제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작업을 지난 10여 년 동안 만나기 힘들었다.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과 지역의 고질적 한계, 나아가 실업, 결혼, 학업, 입양, 다문화사회, 테러, 핵위협,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알력과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왜곡된 힘의 논리, 민족분단의 문제 등과 같은 현실이슈들을 적극 끄집어내어 반영한 회화를 만나기 어려웠다. 한국미술은 그저 밝고 명랑하고 프티(petit)하며 일견 역동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작업이 비롯되는 사회의 이런저런 현실, 자신의 모습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세상은 외견상 풍성해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곤궁했다. 사회는 시나브로 병들어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도 그러했다. 미술동네도 예외일 수 없었다. ●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하나둘 지쳐갔다. 인기작가 몇몇을 쥐고 앉아 상황에 따라 '돌려막기'하는 식으로 미술동네가 돌아갔다. 작가들은 물론 시장 스스로도 상업적 동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시장은 시장이다. 과연 예민했다. 지난 10여 년을 든든하게 지지했던 컬렉터들의 충성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대중과 작가의 피로감도 급속하게 누적되었다. 이들은 서둘러 이리저리 대안을 찾아나서는 형국이다. 전략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물고를 트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이들에 비해 작가는 그러한 변화양상이나 세류의 변화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나 자각이 더디었다. 안다고 해도 몸을 바짝 낮추고 시장과 대중의 눈치를 살피는 형국이었다. ● 성곡미술관이 중견중진작가집중조명전 대상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을 '화제작가'보다는 '문제작가' 쪽으로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작가와 작품의 성격은 제작년도와 관계없이 당대성을 강하게 띤다. 성곡의 중견중진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래토록 불리우는 노래처럼,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 셀러 소설처럼, 여전히 유효한 작업과 작가정신을 대상으로 한다. 즉 그 어떤 경우보다도 작가의 예술철학과 자세, 정신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 화제작가는 일시적, 소비적으로 화들짝 세간의 주목을 받을 따름이다. 문제작가가 대부분 미술사에 남는다고 확신한다. 성곡은 이들 문제작가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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