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의 이해
1. 추상 (absraction, Abstraktion) 은, 일반적으로 말하여, 사물의 표상에 포함되는 징표들 중에서 하나, 또는 몇 개를 분리, 독립시켜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정신의 지적 작용을 가리킨다. 이 경우 다른 여러 징표들은 무시되거나 배제된다. 추상은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모든 개념과 판단이 이루어지는 기초적인 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학적인 용어로서의 추상은 주로 모방 (imitation), 재현 (representation)의 부재를 의미하며, 미술에서는 대상의 묘사를 떠난 비모방적, 비재현적인 양식의 회화나 조각의 양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추상미술 (abstract art)은 자연주의 (naturalism)내지 사실주의 미술 (realism)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상미술의 일반적인 정당화의 논거는, 그것이 자연주의 내지 사실주의 미술과 동일한, 또는 더욱 더 현실적이고 강력한 의미와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추상미술가들은, 예를 들어 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실제로 감상자들의 마음을 끄는 것은 캔버스에 그려진 식별 가능한 대상들이 아니라 형태 (form)와 (color), 결 (texture)과 역동적인 선의 운용 같은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가장 중요한 추상화가의 한사람으로 1910년대에 <첫 추상수채화>를 그린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일정한 크기와 색채와 결을 지닌 예각의 삼각형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그려진 시스틴예배당 천정화의 신의 손가락이나 아담과 마찬가지로 큰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추상미술가들은 형태 (form)와 색채 (color), 화면의 결 (texture)과 동적인 리듬 (dynamic rhythm)을, 음악에 있어서의 음들처럼,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가치를 갖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추상미술은 20세기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가장 중요한 측면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20세기 현대미술은 흔히 혁명적인 미술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 혁명성은 주로 르네상스시대부터 19세기까지 서양미술을 지배해온 자연주의적인 전통과 추상에의 경향으로 특징지어질 수 잇기 때문이다.
2. 추상미술의 역사는 길다. 여러 장식미술에서는 고대로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추상적인 디자인들이 채용되었다. (그리고 음악과 건축은 언제나 주로 이런 의미에서 추상적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회화와 조각에서 추상적인 경향이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낭만주의 (Romanticism)에 이르러서이며, 이러한 추상미술이 광범하고 본격적인 현상이 되는 것은 1910년경부터라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
19세기 낭만주의미술 영국과 프랑스에서 융성했으며, 여기서 추상회화에의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영국의 비평가인 윌리엄 해?리트 (William Hazlitt)는 화면에서 묘사대상이 해체되고 흐려지는 터너 (William Turner, 1775-1851)의 1844년도 작품 <비, 증기, 대서부철도>를 "추상"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후원자였던 러스킨 (John Ruskin, 1819-1900)은 그의 <베니스의 돌들 (The Stones of Venice)> (1851-1853)에서 사실의 묘사를 떠난 회화, 즉, 색채와 선의 배치, 구성에 의한 음악의 작곡과 유사한 회화에 관해 논하였다. 또한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적 화가인 들라크루아 (Eug ne Delacroix, 1798-1863)와 그의 지지자였던 보들레르 (Charles Baudlaire, 1821-67)는, 상상력 (imagination)에 의한 창조적인 미술을 요구하면서 "새로운 것은 정신에서 창조되며, 묘사되는 자연에서가 아니다.", "자연은 하나의 사전에 지나지 않는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 사전을 모사한다"면서 자연주의 회화로부터의 이탈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음악적인 색채구성의 회화를 지향하였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인상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순결한 눈" (러스킨)에 의한 시각인상의 완벽하고 정확한 재현으로 간주하여, 자신들이 사실주의적인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네 (Claude Monet, 1840-1926)의 경우 그의 그림에서 점차 이미지가 희미해졌듯이, 그들의 작품은 오히려 이러한 사실주의적인 전통과의 결별을 결과했다. 그리고 그 뒤 후기 인상주의자들은 체계적으로 데포르메와 "순수하게 장식적인" 요소들을 도입함으로써 사실주의와 거의 관계없는 목표들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쇠라 (Georges Seurat, 1859-1891)는 순수한 색점으로 형태를 구성했는데,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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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점묘법 (Pointillism) 회화는 다른 인상주의자들의 회화 보다 더욱 더 추상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또 고갱 (Paul Gauguin, 1848-1903)은 뚜렷한 윤곽선으로 둘러싸인 색면의 광범함 사용에 의해, 그리고 반 고호 (Vincent van Gogh, 12853-1890)는 체계적인 형태왜곡에 의한 강열한 정서적 표현을 의식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사실주의적인 전통에서 이탈하였다. 특히 고갱은 ""너무 많이 자연을 모사하지 말라... 미술은 추상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추상화의 경향에 의해 20세기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화가는 세잔느 (Paul C zanne, 1839-1906) 였다. 그는 자연은 기하학적 입체로의 환원에 의해 가장 잘 재현될 수 있다고 했으며,아울러 회화를 색채의 논리에 따른 구성으로 생각하였다. 모리스 드니 (Maurice Denis, 1870-1943) 역시 그의 동료화가들에게 그림이란 " 전장에서의 어떤 말, 나부, 또는 어떤 일화이기에 앞서 본질적으로 색채로 질서지어지는 평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세기 미술:
ㄱ) 2차대전 이전의 유럽에서의 추상미술의 발전 (20세기초-1930년대).
20세기 미술의 첫 운동으로서 등장한 야수파 (1905년)의 대표적인 화가인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는 색채를 강화하고 형태를 해체하여 거의 환각적인 효과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야수파 및 그것과 같은 해에 등장한 다리파 (die Br cke)와 청기사파 (der Blaue Reiter)등 표현주의 운동 (Expressionism)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추상미술은 1910년대에 칸딘스키의 비대상회화 (non-objective art)라는 본격적인 순수 추상미술을 낳게 된다. 그의 비대상회화는 순수회화적인 방향을 추구한 것으로 주로 비규칙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들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후 볼스 (Wols, Alfred Wolfgang Schulze, 1913-1951), 빌리 바우마이스터 (Willi Baumeister, 1889-1955), 한스 하르퉁 (Hans Hartung, 1904-1989)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른 하나의 비대상회화적 추상미술의 발전은 1907년의 입체주의운동에서 비롯된다. 이 운동을 주도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와 브라크 (Georges Braque, 1882-1963) 등은 세잔느가 예시한 길을 채택하여 대상을 면과 선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기학적인 형태구성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방향은 큐비스트의 단계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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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요소들이 수직, 수평선 속의 원색으로 환원되는 작품을 제작한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의 비대상회화와, 러시아 구성주의(Contructivism)와 말레비치 (Kasimir Malevich, 1878-1935)의 절대주의적 기하학적인 형태의 절대주의 (Suprematism)라는 순수추상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비대상의 순수 추상미술에 있어서는 대부분 이미지들이 자율적이고, 거의 언어학적인 발명물로서 제시되며, 수학이나 다른 예술의 구조들 같은 재료에서 도출된다. 또한 이와 같은 비대상작품에서는 종종 음악이 시각예술의 상징적 기능을 위한 모델로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칸딘스키는 그의 작품에 "푸가 (Fuge)"나 "즉흥곡 (Improvisation)" 같은 음악적dls 제목을 채택하고 있으며, 음악적 화성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또 파울 클레 (Paul Klee, 1879-1940)와 말레비치에서도 이러한 예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단계에 있어서의 추상미술은 이론적이고 사회적인 관심들의 문맥에서 발전되었는데, 여기서 미술작품에는 하나의 이상적인 사회의 창조라는 과제에 있어서 예언자적이고 교육적인 역할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역할은 주로 구성 의, 절대주의, 바우하우스 (Bauhaus) 운동 등과 연결된 선언들과 몬드리안, 칸딘스키 같은 개별작가의 많은 저작 속에서 논해졌다. 이와 관련된 유럽의 추상미술의 중심테마는 "진보 (progress)"로서 그 이론적인 원천은 헤겔 (G. W. F. Hegel,1770-1831)의 예술철학으로서, 예술의 역사는 정신적 진보의 원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 유럽의 추상미술이 자연주의적 형태의 환원에 의해 구성의 통일성을 성취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도, 진보를 비물질화의 과정, 즉 물질에 대한 정신 (합리성)의 승리의 과정으로 간주한 헤겔의 테제를 상기시킨다.
ㄴ) 전후 미국에서의 추상미술의 발전 (1945-1960)
미국에서 추상미술은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발전을 보인 것은
2차대전 직후부터 60년대 팝아트 등장 때까지이다. 일반적으로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로 불리우는 이 새로운 추상미술은 유럽적인 이념적, 양식적인 뿌리를 갖고 있었으나, 아울러 독자적인, 미국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새로운 추상미술에는 예술적인 진보라는 헤겔적인 테마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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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지만,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의 형식적인 가치 (formal values)의 강조,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표현적인 의지 (expressive will)의 관념이 중요성을 얻게 된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조건들을 획득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의 주요 이데올로기들은 사변적인 것도, 유토피아적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심리학적, 개인적이며, 대체로 비정치적이었다.
추상표현주의라는 이름이 함축하듯 이 새로운 미국적 추상미술의 미학은 자기표현을 내용으로 하며, 그 회화적인 전개는, 예술적인 영혼 속에 숨겨진 원초적이고 비관습적인 의미의 영역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 이론적인 모델은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의 잠재의식의 심리학, 그리고 제도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경험을 우선시하는 실존철학의 교의이다. 그러나 얼마간 역설적이지만, 추상표현주의미술은 큰 스케일과 풍부한 회화성을 지니고 있으며, 건축적인 차원을 갖고 있다. 이 추상표현주의의 비판적 정당화는 작가들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Clement Greenberg), 해럴드 로젠버그 (Harold Rosenberg), 토마스 헤스 (Thomas Hess)같은 비평가들에 의해 논해졌다. 이 시기의 중요작가로는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마크 로드코 (Mark Rothko),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애드 라인하르트 (Ad Reinhardt), 바네트 뉴맨 (Barnett Newman), 헬렌 프란켄탈러 (Helen Frankenthaler), 그리고 데이빗 스미스 (David Smith)가 있있다. 그리고 그 이후 1960년대에는 형식의 구체성을 강조한 프랭크 스텔라 (Frank Stella), 도날드 저드 (Donald Judd), 케네드 놀랜드 (Kenneth Noland) 등이 있다.
미국의 전후 추상미술에 있어서는 많은 작가들이 큐비즘의 분석적인 과정을 회피했다. 예를 들어 마크 로드코는 그의 작품에 "추상"이라는 말을 적용시키는 것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함축된 "거리의 설정" (distancing)이 그가 원하는 친밀성 (intimacy)과 그의 취지의 주관적인 직접성 (subjective immediacy)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잭슨 폴록은 초현실주의와 다다에서 발견되는 자동기술 (automatism)과 우연적인 구성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출처:광주비엔날레 미술영상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