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18세기 이전에 출생한 미술가들을 소개 해두었으며 출생일 순으로 정렬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 2009-11-05 11:10 조회 수 5533 댓글 수 0

르네상스 미술의 흐름에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던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17세기 이탈리아의 바로크(baroque) 미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화가입니다. 그는 39년이라는 짧은 생애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내며,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당시 전성기였던 르네상스(renaissance) 미술의 흐름을 급격하게 변화시켰습니다. 르네상스가 종말을 맞이할 즈음, 인간의 내면과 종교내용을 주제로한 회화에 집중하던 당시 미술세계에, 현재 밀라노 박물관에 소장된 "과일 바구니"란 정물화를 제작하여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기도 하였습니다.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02; Oil on canvas, 42 1/8 x 57 1/2 in; Neues Palais, Potsdam

 

 

 

 

그는 종교적 리얼리즘과 강한 명암의 대비를 바탕으로 인간의 격정을 힘차게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카라바조의 시적 사실주의 화풍은 기성의 화가로부터 반발을 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젊은 예술가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음으로써 새로이 전개하려고 하는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의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목격자로 승격시킴으로써 당시의 회화에 혁명을 일으킵니다. 
  

 

 

Supper at Emmaus
c. 1600-01; Oil on canvas, 54 3/4 x 76 3/4 in; National Gallery, London

 

 

 

 

그는 1571년 9월 29일,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근처에 있는 카라바조(Caravaggio in Lombardy)라는 작은 마을에서 집사이자, 건축가였던 가난한 페르모 메리시(Fermo Merisi)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카라바조의 본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였습니다. 그런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의 미술을 지배하고 압도했으며 카라바조보다 한 세대를 먼저 살았던 화가,  미켈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이탈리아, 1475~1564)와 구분하기 위하여 그의 가문이 있던 마을 이름인 카라바조(Caravaggio)를 따서 그의 이름으로 대신 부르게 되었습니다.


6살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3살인 1584년부터 밀라노에서 티치아노의 제자인 시모네 페테르차노(Simone Peterzano)선생 밑에서 그림을 공부하였으나, 1590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먹고 살아야 했으므로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 팔거나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밑에서 제단그림을 모사하거나 정물그림들을 그려 주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하였으며, 오랫동안 병을 앓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카라바조를 후원해 준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Kardinal Del Monte)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계기가 되어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는 카라바조가 외부에서 공식적으로 주문받은 콘타렐리 카펠레 제단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으며 그의 실험적인 초기 그림을 수집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The Crucifixion of Saint Peter
1600-01; Oil on canvas, 90 1/2 x 70 in; Cerasi Chapel, Santa Maria del Popola, Rome

 

 

 

 

 

빈손으로 출발해 미술계의 거장이 된 천재 화가, 카라바조

초기에는 정물과 초상을 치밀한 사실기법으로 묘사하여 바로크양식을 확립하였습니다. 1602년에 제작된, 로마 콘타렐리 성당에 그린 "성 마태오의 일생(천사로부터 영감을 받는 마태오, 마태오의 소명, 마태오의 순교)"은 카라바조의 사실주의적 자연주의가 충만하게 배어있는 작품들입니다. 1600년 경에 완성한 이 그림들은 미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관람자를 극적 절정의 장면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Judith Beheading Holofernes
c. 1598; Oil on canvas, 56 3/4 x 76 3/4 in; Galleria Nazionale dell'Arte Antica, Rome

 

 

 

 

현재 전해지는 대부분의 그림만큼이나 그는 격정적인 삶을 살았는데, 어려움 속에서도 화가로서 인정받으며 차츰 부와 명예를 쌓아가고 있을 무렵인 1606년,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그만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 때부터 카라바조는 체포를 피해 고단한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1607년, 기사 수도회 총회장인 알로프 드 비냐쿠르 (Alof de Wignacourt)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인정받게 되어 몰타 기사단의 기사로 지명되기도 하며, 비록 도망자의 신분이었지만 이 시기 동안 그는 훌륭한 그림들을 많이 남깁니다.

이렇게 불안한 삶을 살던 카라바조는 긴장과 피곤으로 병을 얻어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던 1610년 7월 18일, 예전에 그와 다툰 적이 있는 한 귀족이 보낸 자객의 칼에 맞았습니다. 낯선 지중해 해변가에서 말라리아병으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고, 결국 39세의 젊은 일기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