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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작가들과 작품을 소개하는 곳입니다.

김동원 2006-10-09 03:53 조회 수 5459 댓글 수 0


앤디 워홀

p.45
  워홀에 대해 말하는 대부분의 평론가나 미술사가들은 워홀 작품의 특성과 예술에 대한 태도, 이념을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한다. 물론 그와 같이 요약된 워홀의 작품과 예술적 이념의 특성은 관점에 따라 다소의 가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먼저, 주제나 소재를 콜라 병, 수프 등의 일상적이고 비개성적인 사물과 대중적인 스타, 매스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사건, 사고, 죽음과 최후의 만찬 같은 옛 대가들의 걸작 등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들에서 택했다.
  둘째, 제작 방법으로 기계적인 생산 방식인 실크 스크린을 택했다. 실크 스크린은 누가 제작했는지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으며 기계적인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무수한 복제가 가능하다.
  셋째, 이미지의 처리 방식은 사진의 단편성, 비서술적 성격을 이용해 변형했다. 그리고 이미지를 반복 나열함으로써 이미지가 가지는 개성, 충격, 감동 등을 제거해 무감각, 냉담한 상태로 이끌었다.
  넷째, 제작 과정에서 보조자를 채용하고, 작품에 타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전통적인 예술가의 권위에 도전했다. 즉 예술이란 재능있는 특별한 개인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서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예술과 예술가의 범위를 넓혀 놓았다.
  다섯째, 워홀은 예술도 비지니스의 일종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예술의 상업적 성격을 직시했다. 즉 예술 작품을 상품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자신이 이미지 생산자임을 말과 행동에 의해 밝혔다.
  여섯째, 실크 스크린에 의한 평면 작업 뿐 아니라 영화, 잡지, 심지어 유선 방송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예술 활동이 한 부분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예술의 대중화와 대중적인 예술의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타진한 것이다.



  워홀의 감추기와 드러내기, 혹은 닫기와 열어두기라는 방법적 전략을 사용한 분석은 이상 살펴 본 워홀 작품과 이념적 특성에도 별다른 무리없이 적용될 수 있다. 워홀이 선택한 소재들은 특별한 것이거나 개성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존스, 라우센버그, 올덴버그, 리히텐슈타인 등의 팝 아트 작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지만 워홀에 있어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왼쪽부터 Triple Elvis(1963) Marilyn Monroe, Orange, Beethoven, Yellow Book>


   워홀이 선택한 소재들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잇다. 먼저 코카 콜라 병, 수프 캔, 지폐, 브릴로 상자 등의 일상적인 소비품과, 재난 시리즈에서 집중적으로 인용된 매스 미디어가 생산한 대중적인 이미지들이 있다. 그리고 마릴린 몬로, 앨비스 프레슬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의 연예계 스타와 마오 쩌 뚱, 빌리 브란트, 지미 카터, 레닌 등의 정치인과 프란츠 카프가, 만 레이, 요셉 보이스 등의 문화계 유명인사들이다. 그 밖에 식물도감 속의 꽃, 코끼리, 대머리 독수리, 인체의 부분, 저명한 걸작 등 역시 일반에게 잘 알려진 이미지들을 한 묶음으로 묶을 수 있다.
  이러한 소재들 가운데 가장 워홀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물론 수프 캔, 비를로 상자 등의 일상 용품과 몬로, 앨비스 등의 스타들과 대중 매체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들은 워홀의 창의력이 고조되어 있던 60년대 초기에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워홀은 자신이 콜라 병을 소재로 삼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나라 미국의 위대성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같은 것을 구입한다는 전통을 세웠다는 점이다.
  TV 광고에 등장하는 코카 콜라는 리즈 테일러도, 미국 대통령도 그것을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잇으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 뿐 아무리 큰 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 모퉁이에서 건단이 빨아대고 잇는 ㅋ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유통되는 콜라는 모두 똑같다."

  워홀의 이 말은 흔히 대량 생산품에 의해 비롯된 소비 문화에 대한 찬사의 의미가 있다고 해석되지만, 그러한 해석은 워홀이 소비 사회에 대해 지나치게 순진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본 것이다. 워홀은 수프 깡통에 대해서도 '그것을 마셔왔고 지난 20년간 매일같이 수프를 먹었으며 앞으로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것이기'때문에 캠벨 수프를 다루었다고 말했다. 워홀의 이러한 견해들은 사실 찬사나 비난을 떠나 평범한 삶이 선전 광고에 의해 대량 새산품들과 빈번히 접촉하고 영향받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워홀이 다룬 일상 용품들은 대중의 시선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너무 흔해 빠져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감춰져 있는 것이 된다. 일상적 이미지의 탐정이 된 워홀을 이런 이미지들을 드러내고 열어 젖힌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중성적이다. 마치 거울이 아무런 해석 없이 사물들을 무심하게 비추듯이.
  일상적 이미지들을 드러나게 해 사람들의 눈길을 끈 워홀은 이미지들에 아무런 해석을 가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미지들을 감춰버리는 이중전략을 구사한다. 그렇게 해서 워홀의 이미지들은 냉담하고 무미 건조하게 원래 이미지들과 거리를 유지한다. 그 거리를 워홀은 즐기고 있는 것이다.
  워홀이 다루는 스타들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들은 스크린과 지면들을 장식하지만 그것은 단지 이미지로서 뿐이다. 스타들의 자연인으로서의 육신과 사생활은 은폐되어 있다.
  워홀은 실제로 그의 스타를 주제로 한 작품이 어떻게 해석되든지 간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름다움 뿐이라고 이야기 했다. 몬로를 촌스럽게 튀는 색깔로 프린트한 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행위가 아니며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름다움 뿐이라는 것이다. 워홀의 이러한 이야기는 스웬슨의 지적처럼 단지 그가 좋아하기 때문에 작품화 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명성과 죽음에의 관심에서 시작된 그의 죽음, 재난의 연작에 대해 워홀은 그 작품들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말했다. 첫 부분은 유명한 사람들의 죽음이고 두 번째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죽음이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행기 추락사고, 자동차 사고, 잘못된 참치고기를 먹고 중돈된 사람 등을 주제로 한 그의 재난 시리즈가 시작된다.


  <129명 사망>은 신문에 실린 사진을 정확히 그대로 옮기거나 즉흥적으로 변형시키는 대신에 워홀은 마치 일어난 사건과 관객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한다. <129명 사망>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의 하나는 제니스 헨드릭슨(Janig Hendrickson)의 그것이다. 그에 의하면 그 비행기에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애틀랜타 주와 조지아 주 등지의 미술가 협회 회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워홀은 그 문화 순례자들이 자신들이 사는 세계의 문화적인 열등성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워홀의 <129명 사망>은 매스 미디어 시대에 미디어들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태도에 숨겨져 있는 약점을 폭로하고 있다. 비행기 사고에 의해 실제로 129명이 죽었다는 끔찍한 사실은 신문에 의해 선택되면서 그 성격이 바뀐다. 신문에 등장하는 사고는 미학적 고려하에 회화적인 구도로 사진 찍힌 이미지와 독자의 주목을 끌기 위한 대문자 표제로 장식되어 버린다. 설사 사진을 찍은 사람이 미학적인 고려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그 사진에 의해 129명이 죽은 끔찍한 참사가 미학적인 대상으로 전환되어 버리는 것이다.

앤디 워홀, 거울을 가진 마술사의 신화 : 강홍구 : 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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