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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작가들과 작품을 소개하는 곳입니다.

선생님 2009-10-25 18:17 조회 수 4130 댓글 수 0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강원도 홍천에 살던 한 소년은 큰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약방을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대문을 들어서면 매캐한 한약 냄새가 진동하고 한약재를 싼 종이봉지가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그곳은 어린 소년에게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놀이터였고, 큰아버지로부터 받은 일전짜리 지폐로 사먹는 빨간 눈깔사탕은 달콤한 유혹과도 같았다.

뜻모를 글자가 잔뜩 쓰인 종이봉지들이 노끈으로 묶여 천장 가득 매달려 있는 그 모습은 소년의 어린 눈에도 주위를 압도하는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한지 오브제로 작업하는 작가 전광영의 어린 시절이다.

미국 유학생활 동안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었던 ‘나는 누구인가,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귀국 후 작가로서 오랜 기간의 그늘진 삶을 지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 한약방 천장의 ‘한약봉지’에서 말이다. 우리 나라 고서의 한지로 스티로폼을 싸고 그 위에 같은 종이로 노끈을 만들어 묶은 삼각형의 조각 수천 개가 모여 이루어진 그의 〈집합(aggregation)〉 시리즈는 바로 그 ‘한약봉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우리 전통문화에서 출발한 전광영의 작업은 해외에서 날이 갈수록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양적인 소재와 서양적 미니멀리즘이 결합한 작품이라는 표면적 이유뿐 아니라, 개인적인 동기를 보편적인 문화적 가치로 승화했다는 타당성이 뒷심으로 작용한 결과다.

“미국이 박스 문화라면 우리는 보자기 문화다”는 그의 말대로 물건을 ‘상자’의 규격에 딱 맞게 넣어 운반하는 것이 서양의 포장문화라면, 우리의 포장문화는 ‘보자기’ 문화다.

시집 간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이것저것 챙겨 싸놓은 보자기.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에 자꾸 더 집어넣어도 계속 들어가는 보자기. 그것이 바로 정이 묻어나는 우리만의 ‘싸기’ 문화인 것이다. 전광영은 자신의 작업에서 한지 오브제를 통해 은연중에 그 싸기 문화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각광받는 것은 아이러니컬하지만, 한편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본격적으로 〈집합〉 시리즈를 발표해 온 1995년경부터 전광영은 박영덕화랑, 박여숙화랑, 국제갤러리 등 국내 주요 화랑을 통해 각종 아트페어와 해외전시에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지금까지 시카고, 쾰른, 바젤, 마이애미, 팜비치 등 주요 해외아트페어에서 그의 〈집합〉 시리즈는 화상과 딜러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고, 매 페어마다 판매와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킴포스터 갤러리와 미쉘로젠필드 갤러리에서 여러 차례 개인 초대전을 가졌고, 그때마다 《아트 인 아메리카》나 《아트 포럼》과 같은 유명 미술잡지에서 그의 리뷰를 다루었다.

자국에서 활동하는 동양작가가 전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맨해튼에 전속화랑을 갖고 또 현지언론의 주목을 받기란 쉽지 않음을 생각해 볼 때 그의 작품이 얼마만큼 서양사람들에게 어필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미국 조지아주 콜럼버스 미술관과 호주 캠버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졌다.

게다가 올 6월 열리는 바젤아트페어, 그 가운데서도 우수한 실험적 현대미술 작품만을 한정 전시하는 ‘언리미티드 쇼’에 초대된 그는 관객을 압도하는 지름 4m짜리 대형 작품을 천장에 설치할 계획으로 요즘 매우 분주하다.

일일이 스티로폼을 자르고 종이로 싸고, 노끈으로 묶어 삼각형 조각들을 만들어 놓고, 또 그것들을 하나하나 틀에 붙여 나가는 작업 공정 자체가 워낙 손이 많이 가는데다, 큰 규모의 작품제각을 위해 전광영은 제대로 된 자신의 작업실이 필요했다.

우선 작업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업공간을 분리하기를 원했고, 작품을 보관하고 촬영하기에 편리하도록 고안된 수장고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전시공간을 갖기 원했다. 순전히 작가의 필요에 따라 작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지어진 기능성 위주의 작업실이 작년 가을 탄생하였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전광영의 새 작업실은 대지 600평, 건평 300평 규모에 건물 앞쪽으로 밤나무가 빼곡이 들어선 나지막한 산과 건물 뒤쪽에 계곡과 이어진 작은 연못이 있는 아름다운 경관까지…, 마치 도시 근교의 작은 미술관에 온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디딤돌을 밟고 한참을 들어가니 유리와 콘크리트로 된 단정한 건물이 보였다.

동남향으로 지어진 작업실 건물 내부는 두 개의 동으로 나뉘어 그 사이를 계단과 테라스가 이어주고 있었다. 오른쪽 라인은 지하 기초작업실, 1층 작업실, 2층 전시장, 3층 옥상으로 되어 있고, 왼쪽 라인은 1층 접견실 및 사무실, 2층 수장고, 3층 창고로 되어 있다. 작업을 하는 공간과 개인업무를 보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을 같은 층에 배치하고,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와 그곳에 보관된 작품들을 꺼내와 전시하는 공간을 같은 층에 배치한 것은 동선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업실의 여러 공간 중 인상 깊었던 곳은 기초작업실과 수장고, 그리고 전시장이다.

집합〉의 삼각형 조각들을 만들기까지 전공정이 이루어지는 기초작업실에는 수백 권의 고서가 쌓여 있었다. 전광영은 우리 나라 고서만을 고집한다. “70, 80년 전 종이를 만들고, 여러 가지 내용을 담은 글을 써서 그것을 나누어 읽고 후대로 전해져 현재 자신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그 책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이 들어 있으므로 우리 민족의 얼이 집약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전광영의 초기 추상화부터 여러 형태의 한지 오브제 작품들을 찾기 쉽게 정돈해 놓은 수장고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훑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작품 슬라이드 제작을 위해 조명이 세팅되어 있는 수장고 안의 촬영공간은 건물을 설계한 작가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전광영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은 2층 전시장이다.

외국인들이 작업을 보고자 방문했을 때 작품을 부랴부랴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조건을 갖춘 전시공간에서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 작업실이 완공된 이후 많은 국내외 미술애호가와 소장가들이 이곳을 다녀갔고,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제는 우리에게 세계적인 작가만큼이나 세계적인 작가를 만들어 내는 환경과 시스템이 필요하리라 본다. 해외에 더 널리 자신의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알리고 더 많은 곳에 자신의 작품이 걸리기를 바라는 전광영의 노력이 진정한 한국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 전광영은 평면뿐 아니라 입체로까지 작업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여든 살이 다 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루이스 부르주아처럼, 지금부터 90세가 되는 30년 후까지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시기로 삼겠다는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Aaggre-gation 2002∼2032’, 전광영의 새로운 작업실 이름이다.

신혜영

전광영 '작가와 작업실' (월간미술 2003.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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