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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상상력
김옥렬
천재(genius)는 그 어원에 따르면 원래 남성의 생식력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창조적 생명력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 후 의미가 변해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따라다니며 사람의 운명을 이끌어주는 수호신을 뜻하는 말이 되고, 현재에는 천재의 의미가 천부적인 재능, 특히 창조적 능력이 탁월한 행위를 가정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신과 동등한 높이에 두려고 하는 근대적이고 인간주의적인 이상개념이지만, 천재의 궁극적 가치를 인간이상의 힘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신비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를테면 천재는 의식적 능력의 행위가 도달할 수 없는 연적 성격을 창조행위로서 나타낸다는 것이다.
칸트는 천재를 '자연이 그것에 의해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심적 소질(心的素質)'이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예술가가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내는 독창성이 천재의 첫 번째 특징이며 칸트는 이것이 '목적없는 합목적성'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천재는 곧 '자연의 총아(寵兒)'이다. 그리고 괴테에 의하면 천재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자연성을 데모니쉬(damonisch,악마적, 초자연적)한 힘으로 보고, 천재성을 영감과 무의식을 통해 긍정적인 삶의 힘으로 이끄는 창조력으로 규정한다.
또한 현대의 정신의학의 입장에서 보면 예로부터 천재라고 일컬어진 인물의 대부분이 다소 정상에서 벗어난 정신병적 경향을 나타내었다는 것을 볼 때, 천재와 광기의 유사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천재는 반드시 어떠한 적극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광기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다만 천재적인 예술가는 종종 갑작스런 초인적인 힘에이끌려 자신의 의지와 사고를 떠나 거의 무의식에 빠지게 되며 때로는 열광과 황홀의 상태에서 창작에 임한다는 것이다. - 마치 보다 높은 무언가가 그의 손을 통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inspire) 같다는 의미에서 - 미학에서는 예술가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힘을 영감(inspiration)이라 부른다. 이러한 영감 속에서 예술가는 기교나 숙련 등의 의식적 작업을 벗어나 반드시 어떤 가치 있는 작품을 창조한다. 이와 같이 영감은 작품을 통해서 객관적인 가치를 실현한다. 바로 이러한 천재적인 영감이 실현될 때 비로소 천재와 광기(혹은 기발한 착상이나 무의미한 열광)와의 구별은 확연해 진다. 따라서 천재는 단순한 광기와는 구별되는 상상력(imagination), 이를테면 예술의 참된 근원으로서의 상상력이 전재되어야 한다.
상상(想像)은 그 어원인 그리스어 現出시키다(phantasein)에서 나타나듯이 의식 속에 직관적 심상을 떠올리는 작용을 의미한다. 상상은 심상에 의한 사고로서 심상의 직관성과 감정적 가치를 본질적 계기로 하며 심상의 흐름 그 자체에서 성립한다는 점에서 사고와는 분명히 다르다. 상상은 직관적 창조성을 그 본질로 하는 것이고 이는 예술창작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상상이 단지 몽환적이고 극단적으로 비현실적인 심상을 만들어내는 공상적 능력의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시인인 콜리지는 공상(fancy)과 상상을 구별했다. 예컨대 공상은 단순히 흩어져 있는 소재를 자유로이 결합하여 하나의 통일로 만드는 능력을 말하고, 보다 깊은 의미에서 상상은 공상의 능력을 전재로 하면서도 인간의 주관일반이 정립되는 때에 나타나는 높은 창조력에 의해 생기를 발한다. 이와 같이 예술적 상상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독창성의 능력으로 해석되며 천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심적 능력으로 간주된다. 뿐만 아니라 상상력은 천재개념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있어서 궁극적 가치개념이기도 한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예술작품을 창작한다고 할 때 이미 그 순간부터 상상력이 작용한다. 이러한 상상은 현실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세계를 향유해 나가는 개성적인 세계이며, 동시에 독자적인 세계를 능동적인 삶의 가능성으로 열어 주는 세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술을 창작이라 함은 자유로운 심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작에 대한 열망을 가진다는 것이며, 이를 고안이나 계획에 의하지 않고도 전체의 형상을 의식에 포착해 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로 예술가의 영감이나 상상력이 내포된 예술작품은 그 생명력이 끊임없이 살아나 非천재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게 될 것이다.